로마서 15:7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심과 같이 너희도 서로 받으라.
고린도전서 12:25 오직 여러 지체가 서로 같이 돌보게 하셨느니라.
베드로전서 5:5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야고보서 2:1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지 말라.
세상에서는 어떤 계층, 종족, 직업, 그리고 문화가 다른 것들보다 더 힘을 가진다. 하지만 교회는 세상적인 신분 사다리나 위계서열을 대단하게 생각하는 것을 거부한다. 이것은 의도적으로 다른 이들과의 관계의 벽을 허물고, 문화적 담벼락을 뛰어넘어 건설하는 것이다.
사도 바울의 회심은 기독교 공동체의 이러한 특징을 보여준다. 기독교인들에 대한 사울의 처음 태도는 ‘살기’가 등등했다. 사울은 스데반을 돌로 쳐 죽이는 것을 마땅이 여겼다. 그는 이 일을 더 많이 하기 위해 다메섹으로 여행을 갔다. 다메섹의 아나니아는 사울이 파송된 것을 알고 있었고, 자신도 사울에 의해 결박되고 살해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아나니아는 갑작스런 주님의 음성을 듣는다. 살해자/박해자인 사울이 그리스도를 믿는 회심을 했다는 것이며 아나니아가 그에게 가야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두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아나니아는 즉각적으로 순종한다.
“아나니아가 떠나 그 집에 들어가서 그에게 안수하여 이르되 형제 사울아… 예수님이 나를 보내어…” (행 9:17)
그 당시 교회의 상황을 생각해보면 사울이 체포하고 죽게 한 사람들 중에는 아나니아가 아끼고 사랑하는 이들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복음은 오래된 끈과 이전의 정체성을 소멸하게 한다. 이제 사울은 그리스도를 믿는다. 이 말은 사울은 즉각적으로 아나니아의 형제라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아나니아는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당신이 과거에 누구였고, 무엇을 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리스도 때문에 우리는 형제이다”
성경적인 근거
고린도전서 12장은 많은 사람들이 더 큰 은사를 가졌음을 밝힌다 (예를 들어 말하는 능력, 리더십의 능력). 그것들은 세상에서 더 큰 존경을 받는다 - 그러나 교회 안에서는, 여러 지체가 “서로 같이 돌보게”(25절)하셨다. 우리는 동등하게 서로를 받아들이고, 환영하고, 돌보아야 한다.
야고보서 2장 1-14절은 가난한 이를 차별하고 부자를 편애하는 것을 금지하는 전형적인 본문이다.
- 출처 : 팀 켈러의 "복음과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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